유래 및 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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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면 연혁

양지면 연혁
1470년 성종원년 양지현(陽智縣)(경기도로 이속시킴)
1896년 건양원년 양지군(陽智郡)으로 승격
1914년 4월1일 내사면(內四面)(읍내면,주동면,주북면,주서면을 합침)
1995년 양지면(광복50주년 맞아 개정)
1996년 3월1일 양지면(陽智面)(용인군에서 용인시로 승격)
2005년 10월31일 양지면(陽智面)(3개구청 1읍 6면 21동으로 개편)

지명유래

  • 양지면은 광주지방의 남쪽에 위치한 지리상의 관계로 부족 국가시대 이래 항상 광주지방의 흥망성쇠와 같이한 것으로 보인다.
    삼국시대 이전에는 진· 영역에 들었고, 이어 위례성을 중심으로 건국한 백제의 영지가 되었다.
    그러나 고구려 장수왕 63년(475년)에는 그의 남진정책에 따라 고구려의 판도에 속했다. 그후에 삼국의 싸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통일신라의 영토가 된 것이다.

    양지면은 본래 水州(현:수원)에 속한 양랑촌부곡(陽良村部曲)이었다. 공양왕11년(1362) 에는 안성으로 이속되기도 하였다.

    조선 태조의 개국초에는 고서면 봉림산 아래 주곡리에 읍을 옮겨 양산이라 하고 훈도관을 두었으면 정종원년(1399)에는 안성에서 독립하여 양지현이라 일컷고 비로소 감무(監務)를 두었다. 태종 13년(1413)에 현감을 임명하는 한편 광주목 관할인 추계향으로 옮겼다.

    그후 세종때까지 광주진의 관할 구역으로 계속되었는데 방면이 육방(六坊)에 불과하였으므로 현의 협소함을 당시현감이 상소하여 성종원
    년(1470)에 죽주의 4부곡을 양지현으로 이속시킴과 동시에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관하였고연산군 6년(1500)에는 읍을 폐하고 이주부(利州府)에 합속시켰다.

    그후 연산군 10년(1504)에 복설(復設)하여 정수산 아래에 개읍을 하고 양지라 하였으며 동시에 가까운 5개마을을 병치하여 읍내면이라 칭함으로서 방면은 11면에 이르렀다. 갑오경장 이후 건양원년(1896)에는 양지군으로 승격되어 경기도의 4등군이 되었으나 1914년4월 1일 조선
    총독부령에 의해 용인군과 병합하였고 읍내면,주동면,주북면,주서면 등 4개면을 합치고 읍내에서 끝자인 내자를 합쳤다하여 내사면으로 개정되었다.

    1995년 광복50주년을 맞이하면서 일제 식민통치 시절 명명된 일제식 지명을 정비할 때 민족자존심 회복과 지역 전통성을 계승 발전 보존하고자, 1914년 생겨난 면 명칭인 내사면을 양지면으로 고침으로써 조선시대로부터 이어온 고유지명을 실로 81년만에 회복시켰다.

    그후 1996년 3월1일을 기하여 용인군이 시로 승격되었고 2005.10.31일부로 3개구청과 1읍 6면 21동으로 개편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담당부서양지면
  • 전화번호031-324-5842